리뷰

위대한 개츠비

youlmoo 2013. 1. 10. 02:21

어떤 열기에 휩싸여 이 책을 읽었다. 카사블랑카 같은 올드 헐리웃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처럼 긴장하며 움찔움찔했다.

절대적으로 번역이 잘 된 탓인지, 십년이 넘어서 다시 읽은 탓인지 오랫만에 책을 놓을 수 없을만큼 페이지가 잘 넘어가서 기뻤다.

 

 

접어놓은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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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데이지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마뜩잖아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그다음 토요일 밤에 개츠비네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데이지와 함께 나타났다. 모르긴 해도 그의 출현 덕분에 그날의 파티는 특별한 긴장에 휩싸이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여름의 다른 파티와는 확연히 달랐다. 같은 사람들, 최소한 비슷한 종류의 인간들, 늘 그렇듯 엄청난 양의 샴페인과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가락의 소란들, 그러나 나는 그날의 공기에서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어딘가 잔인한 느낌이 퍼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버리는 바람에 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웨스트에그라는 동네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인식하고, 그 자체의 기준과 형태에 비추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바로 데이지의 눈을 통해서였다. 그동안 적응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것들을 전혀 다른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서글픈 일이다.

 

 

....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집사는 졸지 않고 네시까지 기다렸다. 이미 받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시간까지. 나는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정말 올 거라고 믿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는 자신이 오래 간직해온 안온한 세계가 이미 끝나버렸고, 단 하나의 꿈을 갖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렀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무시무시한 이파리들 사이로 생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장미 한 송이조차 얼마나 그로테스크 하게 보일 수 있는지,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풀밭 위로 떨어지는 햇빛이 얼마나 날것일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는 몸을 떨었을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세상,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물질적인 이런 세상에서 가련한 혼령들은 마치 숨을 쉬듯 꿈을 들이마시면서, 우연을 가장하여 주위를 맴도는 법이다.......희끄무레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소리없이 그에게 다가오는 저 잿빛의 기묘한 형상처럼.

 

 

 

 

...

나는 개츠비에 대해 생각하려고 애써보았지만, 그가 이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는 분노 없이 기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데이지가 꽃 한 송이, 조전 하나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비가 내리니 망자에게 복 있을지어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올빼미 안경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아,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언젠가 운전에 대해서 말한 적 있잖아요."

"네......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쁜 운전자는 다른 나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나쁜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안 그래요? 내 말은, 내가 경솔하게 혼자 내 멋대로 억측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난 당신이 좀더 꾸밈없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당신도 남몰래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나는 이제 서른이에요." 내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나이는 오 년 전에 지났어요."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리고 반쯤은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그리고 막심한 후회를 하며, 나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

 그곳에 앉아 그 옛날 미지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개츠비가 데이지네 집의 잔교 끝에서 빛나는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생각이 이르렀다. 바로 이 파란 잔디밭까지 오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꿈이 어느새 자기 등뒤에, 저 뉴욕 너머의 혜량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어두운 들판 위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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