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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고전 - 이태준

 백수사의 새번역물을 읽는 맛도 좋지마는 때로는 신문관이나 한남서원의 곰팡내 나는 책장을 뒤지는 맛도 좋아라. 고전 고전 하는 바람에 서양 것만 읽던 분들이 돌아와 조선 것을 하룻밤에 읽고 하룻밤으로 낙망한다는 말을 가끔 듣는 바 그런 민활한 수완만으로는 서양 것인들 고전의 고전다운 맛을 십분 음미하였으리라 믿기 어려웁다.

 고려청자의 푸른 빛과 이조백자의 흰 빛이 지금 도공들로는 내지 못하는 빛이라고만 해서 귀한 것은 아니니 고려청자의 푸름과 조선백자의 흼을 애완함에 공예가 아닌 사람들이 차라리 더 극진함은, 고전은 제작 이상의 해석, 제작 이상의 감각면을 따로 가짐이리라.

"달아 높이곰 돋아사

멀리곰 비최이시라"

 

이 노래를 읊고 무릎을 치는 이더러

"거 어디가 좋으시뇨"

묻는다더라도

"거 좀 좋으냐"

반문 이외에 별로 신통한 대답이 없을 것이다.

"달라 어서 높이 높이 올라 떠서 어떤 깊은 골짜기든 다 환하게 비치어라. 우리 낭군 돌아오시는 밤길이 어둡지 않아 발도 상하심 없이 한시라도 빨리 오시게......"

이렇듯 해석을 시험하고,

"좀 용한 소리냐"

감탄까지 한다면 이는 자칫하면 고인들을 업신여기는 현대인의 오만을 범하게 될는지도 모르는 바다.

"달아 높이곰 동아사 멀리곰 비최이시라"

물론 묘구로다. 그러나 현대 시인에게 이만 득의의 구가 없는 바도 아니요 또 고인들이라 해서 이만 구를 얻음이 끔찍하다 얕잡을 것은 무엇이뇨.

고전 정신의 대도는 영원히 온고지신에 있겠으나 고전의 육체미는 반드시 지식욕으로만 감촉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 그러므로 모든 고전미는  고완의 일면을 지님에 엄연하도다. 고려청자난 정읍사에서 그들의 고령미를 떼어버린다면 무엇이 그다지도 아름다울 것인가.

"달라 높이곰 돋아사......"

 한 마디에 백제가 풍기고, 여러 세세대대 정한인들의 심경이 전해오고, 아득한 태고가 깃들임에서 우리의 입술은 이 노래를 불러 향기로울 수 있도다.

 고령자의 앞에 겸손은 예의라 자기 하나에도, 가요 하나에도 옛 것일진대 우리는 먼 앞에서부터 옷깃을 여며야 하리로다. 자동차를 몰아 '호텔'로 가듯 그것이 아니라 죽장망혜로 산사를 찾아가는 심경이 아니고는 고전은 언제든지 써늘한 형해일 뿐, 그의 따스한 심장이 뛰어주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느끼기 전에 해석부터 가지려 함은 고전에의 틈입자임을 면하지 못하리니 고전의 고전다운 맛은 알바이 아니요 먼저 느낄 바로라 생각한다.

 

 

무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