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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결과

Requiem

마음이 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엄마가 예전에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난 슬퍼' '너무 슬펐어'
슬프다는 단어를 그 입에서 직접 토해내는 걸 들을때면 나는 즉각 거부반응이 일어나 위로는 커녕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안다, 난 좋은 딸이 못 된다.)
그 단어를 함부로 내뱉어도 되는 가벼운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랬다. 슬프다는 그 말이 내뱉어질 정도의 무너지는 가슴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건성으로 들었던 엄마의 사연 속에는 그럴만한, 아니 그것으로는 부족한 아픔이 독처럼 자라났다는 걸, 늦게나마 헤아려 봤다.
아픔에 대해서 생각하다, 내가 아는 아픔을 생각하다보니 잠시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참 고마워하는 사람의 동생이 오늘 죽었다.
어둠속을, 적막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걷고 있을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인 양
나도 참 먹먹해져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의 끝을 맞이하는 모습도 참 다양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사고로 예고없이 죽기도 하고,  병으로 죽기도 한다.
숨이 멎어 버리면 그가 있던 자리는 움푹 파여 빠져나가 결국엔 존재했었다라는 진실을 의심하게 되는 그런 끝이 오리라는 걸 안다. 끝이라는 말에 항상 나약해지는 나다.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혹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어느새 잊기도 하고, 변함없이 시작되는 내일을 견딜 수 있을까.


죽은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이 엇갈리고 또 엇갈리는 이 생에서 우리가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끝이라는 단절의 의미보다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아득히 먼곳에 그 사람을 보내주었다고 하면 어떨까.
아파하고 슬퍼하는 대신, 기쁜일 좋은일 떠올리고 행복해할 수 없는걸까.
생의 기운이 다해 우리곁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한때 보낸 그 사람 있었고 아직도 존재한다라고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  


 

River Phoen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