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는사람도 있겠지만 의사소통의 기본은 육체이다. 그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 목소리나 태도도 육체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상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정신이란 것도 결국은 뇌의 작용이 아니던가. 이유 없는 끌림이란 것은 언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인격이 육체화된다. 육체는 정말 중요한 인생의 도구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가 벽이 되어 절대로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친구의 경우,그것이 극단적으로 되었다. 그 아이는 상당히 오랫동안 강간과 아무 이유 없는 살해의 위협을 잊지 못했다.
다른 이유로 육체가 벽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외모의 열등감이나 안면 기형이나 장애, 그리고 성적인 둔감함, 실패한 연애로 인한 자기 육체의 비하, 남자들의 경우 성기능 장애 등이다. 노력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것들도 이 세상에는 많다. 몸과 몸으로 인한 인간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몸이 의식을 규정하고 몸이 자신감과 열등감을 만들고 몸과 몸이 부딪쳐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 이 현란한 시각의 문화가 발달했을까 의문이다. 몸으로 인한 관계 대신 자의든 타의든 몸으로 인한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육체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하거나 자유분방한 관계를 옹호하거나 노출이나 선정성에 대해서 아침 식탁의 시리얼처럼 간단히 선택할 수 있는 문제로 취급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소외감을 느끼거나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내 친구의 경우가 그랬다.
오랫동안 억눌려 왔기 때문인지, 젊고 자신감 있고 첨단의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금 경쟁하듯 육체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심지어 언더 문화라 할지라도 독점적인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위험해지는 점은 같다.
- 배수아 /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