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 vs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샤를르 테송
장 뤽 고다르는 50년대 후반의 누벨바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우린 그때 영화가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영화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40여년 동안 세상의 숱한 영화광들에게 변함없는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고다르의 영화와 진술은 세월이 흐를수록 어두워졌다. 그에게 오늘의 영화, 그리고 내일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21세기 영화의 화두인 디지털, DVD, 인터넷 따위를, 20세기 예술사를 빛낸 이 우울한 거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이자 파리8대학 교수인 샤를르 테송이 고다르를 만났다. 12월3일로 70회 생일을 맞은 고다르는 특유의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단 한 커플의 관객을 위해서도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광적인 신념을 피력했다. 테송 교수의 동의 아래 <카이에 뒤 시네마> 2000년 4월호 특별판에 실린 이 인터뷰를 소개한다. <씨네21>은 앞으로 테송 교수의 글을 정기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샤를르 테송:
전통적인 개념으로 영화에 편입될 수 없는 영화들은 어디에 자리해야 하는가? 영화와 선험적으로 영화가 아닌 것을 연결하는 가교들은 무엇인가? 오늘날 극장이라든가 비디오 개념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 등이 이번 특별호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이고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이다.
장 뤽 고다르:
당신은 정말 이 질문들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텔레비전의 사회자들처럼 그저 사회자로서의 몫을 다하기 위해 질문하는 건가?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자크 시라크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 관심없고 자크 시라크 또한 여자 아나운서가 뭐라고 말하든 관심없다. <리베라시옹>이나 <르 몽드> 같은 신문들이 아직도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영화의 어떤 면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텔레비전은 기록 장치가 아니다. 그렇지만 영화처럼 스크린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책의 지면이 왜 둥글지 않고 네모난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나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는 오늘날의 영화와 다르다. ‘누벨바그’는 기껏해야 3∼4명이 만든 거고 그뒤에 등장한 15명 이상의 감독들은 누벨바그와는 상관없다. 당시 우리가 발견했던 세계는 아무도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았던 처녀지였다. 사람들은 샤토브리앙(19세기 초 낭만주의 소설가)이나 플로베르는 언급했지만 앨프리드 히치콕이나 자크 베커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세계는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건 분명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였다. 물론 여기서 ‘독자적’이라는 표현이 ‘우월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아무튼 누벨바그는 영화의 외아들 혹은 외동딸이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루이 들뤼크과 초현실주의자들이 상징하는 비평의 전통이 존재했다. 다른 나라에도 지성인이나 대학인은 있었지만 비평가는 거의 없었다. 앙리 랑글루아(프랑스에서 시네마테크를 창립한 인물)에게 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았고 장 조르주 오리올에게 영화잡지(<la Revue de Cinema>)를 발간하는 일 또한 영화를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영화를 논하는 것, 그것은 바로 영화를 만드는 일과 동의어였다. 지금 내가 말하는 있는 건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역사적인 거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서 “그 영화는 관객이 많이 들었어“, “그 영화는 거의 관객이 안 들었어” 부터 말하는데 이는 퍽이나 놀랍다. 에릭 로메르가 16mm로 흑백영화 <베레니스>를 찍었을 때, 그는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더이상 비평가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다
테송:
<리베라시옹>이나 <르 몽드> 같은 일간지들이 여전히 영화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사실이 왜 불가사의한 일인가.
고다르:
그들은 영화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 영화 얘기를 한다. 즉 이것 혹은 저것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는 거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스포츠를 소유하듯 영화를 소유하고 있다. 영화비평가들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을 언급한다. <리베라시옹>의 올리비에 세귀레의 변화를 살펴보면 재미있다. 이전의 그의 글은 영화에 ‘대해서’, 즉 텍스트 외적인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영화‘의’ 얘기, 즉 텍스트 자체가 보여주는 것들을 얘기했다. 이건 내가 피에르 브론베르제(누벨바그를 밀어준 대표적인 세명의 제작자 중 하나. 주로 고다르와 일했다)에게 다음과 같이 쓴 글과도 일맥상통한다. “친애하는 피에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했지만 영화가 사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때때로 어느 영화 스탭을 나무라기 위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군. 그런데 영화는 당신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앙리 랑글루아의 몇 안 되는 평론들도 이처럼 텍스트 자체가 보여주는 바들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트뤼포 또한 분명하고 예리하게 영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오랑쉬의 시나리오와 베르나노스의 소설, 즉 텍스트들을 비교하고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겼다.
이런 글쓰기 방식을 따른 마지막 주자는 세르주 다네였다. 그는 사실을 묘사했고 그의 논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 몫이었다.
다네는 <연인>(루이 말 감독)에 대한 글에서 영화에 나오는 ‘장화’에 대해 길게 설명했고 이는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이러한 측면들이 오늘날엔 사라져버렸다. 더이상 비평가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다. 당신이 만일 내게 어떤 영화가 좋다고 말한다면 그게 왜 좋은지 보여주어야만 한다. 선험적으로 당신을 믿을 수는 없으니까. 이 경우 어쩌면 당신의 말이 영화보다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테송:
당신도 비평가로서 상당히 주관적이었는데.
고다르:
나는 다른 비평가들에 비하면 자질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종의 ‘기질 비평’을 한 셈인데, 이는 내가 문화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비평가는 트뤼포였다. 에릭 로메르는 대학 비평쪽에 가까웠다. 그의 첫 텍스트인 ‘영화, 공간의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미국영화의 시나리오들은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여졌고 이를 통해 미국 제작자들은 앞으로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프랑스영화에서도 미국영화의 이러한 시나리오 방식이 실천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귀기울여들었고 상상했다. 그런데 요즘 시나리오의 4분의 3은 상상할 거리를 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의 영화는 이미지의 역할이 부재하는 시나리오영화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래 텍스트가 이미지를 지배했다. 회화와 텍스트간에는 오랜 투쟁과 연합이 있었다. 이후 텍스트가 우위를 점했다. 그런데 영화는 회화적인 전통을 지닌 마지막 예술이다.
이미지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하지만 사실 이미지는 부재하고 텍스트밖에 없다. 컴퓨터상에서도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많다. 광고 텍스트와 단평이 지배적이다. 대체 영화비평이 뭘 비평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들을 읽어보면 비평가 자신이 개진하는 생각들을 검토할 뿐 영화 자체를 분석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사물들과 사실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킹 비더가 감독한 <전쟁과 평화>와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를 구별할 수 없을 거다. 한 영화를 비평하기 위해서는 “이것은 화면의 오른쪽에 있다. 저것은 왼쪽에 있다. 이것은 뜨겁다. 저것은 차다”라는 식으로 단순한 언어행위가 요구된다. 이처럼 영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을 얘기해야지 영화로 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는 안 된다.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실렸던 감독들과의 대담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나’라는 일인칭 사용이 극단적으로 적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일인칭 대신 ‘그’, ‘그것’과 같은 3인칭을 주로 사용했다. 오늘날 감독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지 영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다. 그들은 “난 이런 걸 만들고 싶었어”라고 말하지만 난 그들이 그보다는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더 듣고 싶다.
비평, 영화로 귀환하라
테송:
당신이 비평가였을 때 영화는 소수집단의 예술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각광받고 예술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조형예술들도 영화에 관심을 갖고 풍경화는 완전히 사라졌는데.
고다르: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거다. 텍스트를 지워보라. 그러면 뭐가 남는지 알게 될 거다. 텔레비전의 경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난 텔레비전을 볼 때 소리를 지우고 화면만 본다. 소리가 사라지면 여자 아나운서들의 틀에 박힌 제스처, 다리는 보이지 않고 입만 쉴새없이 움직이며 세계의 영상들을 보여주느라 잠시 사라지지만 이윽고 다시 나타나 반복되는 그녀들의 똑같은 동작들을 보게 된다. 다음날 텍스트만 달라질 뿐 동일한 사람이 나타나 동일한 동작을 반복한다. 그래서 남는 것이라곤 텍스트밖에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라디오로 방송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불행히도 우리가 변화를 원하면 원할수록 상황은 같기만 하다. 과학자들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더 힘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이미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동의하는 어떤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세계에 대한 재현이라는 영화의 본래 기능을 이용하는 거다.
만일 우리가 한 송이 꽃을 찍는다면 사람들은 “어머, 꽃이야”라고 말하겠지. 여기에는 일종의 합의가 들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영화로부터 말하는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프로이트의 텍스트가 진실한 이유는 도라(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을 입증해준 중요한 환자 이름)에 대해 얘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도라로부터 기인한 사실들을 기술했기 때문이다.
테송:
세르주 다네는 어떻게 보면 이러한 글쓰기를 완성한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로 그의 글은 영화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어떤 사실들은 영화보다도 다네 자신에게서 기인한다는 느낌을 준다.
고다르:
그렇다. 그가 마지막 주자다. 만일 내가 프랑스 문학 비평사를 쓰게 된다면 디드로, 보들레르, 말로, 포레, 다음엔 트뤼포 그리고 다네로 할 것 같다. 앙드레 바쟁, 트뤼포는 말할 것도 없고 세르주 다네, 장 루이 보리, 미셸 쿠르노와는 토론이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당신같이 호의있고 성실한 사람과도 토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다른 사람들과는 아예 얘기가 불가능하고. 심지어는 내 영화작업을 도와준 사람들과도 어느 순간부터 대화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가벼움
테송:
디지털카메라에도 관심이 있나.
고다르:
물론이다. 하지만 왜 그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왜 그토록 인터넷에 관해 얘기들을 많이 하는 건가? 그것도 갑자기? 나도 새로운 기자재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단순히 그것들에는 이미 정해진 규칙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프랑스영화가 각종 원칙들과 동업조합주의로 인해 폐쇄된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와 더불어 누벨바그가 형편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미학적 원칙들도 존재했다. 그래서 당시 16mm 카메라, 동시녹음 등은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렇지만 한 영화가 영사돼야 하고 그만의 방식을 따라 상영돼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물론 비디오로 찍게 되면 영사는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이미지, 진정한 텍스트는 제작되는 거다. 언젠가부터 배급이 더 중요하게 되었지만 배급되기 위해서도 제작은 필요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뭘 만들 거냐 하는 것과 왜 그걸 해야 하느냐는 거다. 사람들은 디지털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목조목 그것들을 따져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의 결정적인 약점인 음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지금으로서는 조명없이 촬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문가용 비디오조차 35mm 카메라보다 자연광을 지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비디오로는 불가능한 사진적인 이미지에는 촉각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 디지털은 제작이 아니라 배급상의 이유로 발명된 거다. 숫자 덕택에 사물들이 압축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협소한 장소에 훨씬 더 많은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지하철에서는 납작하게 눌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에서는 압축을 좋아하거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지의 어떤 부분이 사라지게 된다. 상영에서도 질과 정확도가 떨어진다.
테송:
하지만 디지털의 덕택에 소규모 인원만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고다르:
소규모 인원이란 상당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가령 미국인들에게 소규모란 150명을 말하지만 클로드 밀러 같은 감독에겐 18명 정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존 카사베츠는 <페이스>(Faces)를 당시 디지털이 있었다면 그걸로 찍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영상은 훨씬 아름답지 않았을 거다. 비디오 이미지를 기존의 회화적인 방식으로 잡아내기 위해 나만큼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 또한 그다지 성공하진 못했다. 덴마크영화들 몇개는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은 애착이 가는 작품이지만 <셀레브레이션>은 그저 그렇다.
테송:
<백치들>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고다르:
이 영화에서 감독은 그가 택한 주제를 끝까지 밀고나간다. 하지만 <셀레브레이션>에서는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진부하다. <침묵>을 비롯해 잉마르 베리만의 몇몇 작품들도 좋다. 아무튼 <백치들>은 과감한 영화이다.
테송: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백치들>은 진정한 바보와 허위적인 바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감독이 제시하고자 한 바보의 성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고다르:
비평은 트뤼포처럼 해야 한다. 즉 하나나 둘 정도의 시퀀스를 선택해서 그것을 해석하는 거다. 그런 뒤에 철학적이고 주관적인 텍스트나 견해들을 개진하는 거다. 그리고 그 의견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테송:
오늘날의 비평이 보이는 분석의 부족을 비판하는 건가.
고다르:
그렇다. 영화비평은 정신분석에서 분석가가 하는 일과 동일한 작업이다. 안 마리와 내가 공통적으로 좋아했던 또다른 영화는 <사과>였다.
테송: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이 감독한 영화다.
고다르:
사람들은 다들 아버지가 그녀를 도와주었다고 하더라. 나도 모흐센 마흐말바프 영화 가운데 하나를 봤다. 그런데 장 들라누아의 작품처럼 아주 평범했다. 반면 <사과>는 존 카사베츠의 초기 영화들처럼 매우 독창적이었다.
영화는 스키보다 축구 같은 것
테송:
다시 디지털 주제로 돌아가고 싶은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디지털의 ‘가벼움’을 별로 믿지 않는 것 같다.
고다르:
어떤 사람은 사진을, 다른 어떤 사람은 음향을, 또다른 이는 제작진행을 맡으면 이윽고 카메라의 위치가 결정된다. 카메라의 다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들 디지털이 실제로 한 바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으면서 이걸 할 수 있네, 저걸 할 수 있네 하는 잠재적인 가능성들만 늘어놓는다. 디지털 덕택으로 무거운 기자재들에서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언제 뭘 하기 위해 자유로운가? 사실 변한 건 별로 없다. <셀레브레이션>은 극히 고전적이고 관습적인 영화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건 제인 캠피온 감독이 할리우드로 건너가서 만든 영화들만큼이나 진부한다.
물론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전혀 상투적이지 않지만.
테송:
언젠가는 혼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들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고다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거라면 이미 과거에 그렇게 됐겠지. 존 카사베츠는 가족끼리 영화를 찍었고 반면 어떤 다큐멘터리 감독은 어딘가에 착지할 잠자리를 찍기 위해 혼자서 한 시간을 보냈다. 장 마리 스트로브와 위이에 감독만큼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는 감독도 없다. 중요한 건 스크린에서의 결과물이다. 영화의 독창성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 작품을 만든다는 데 있다. 누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혹시 워홀이나 멕 라렌, 마이클 스노 같은 실험영화 감독들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 루시가 <나, 한명의 흑인>(Moi, un Noir)을 만들 때도 3∼4명은 있었다. 영화는 스키보다는 축구에 가깝다. 오늘날에는 집단 규칙이 적어지고 책임감도 줄어들면서 영화를 개인적인 작업으로 보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요즘은 촬영 때 시나리오를 나눠줘도 아무도 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는 감독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 거다. 당연히 있어야 할 토론들이 부재하면서 인간관계가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다. 누벨바그가 부각시켰던 ‘작가 개념’도 완전히 왜곡됐다. 당시엔 시나리오 작가들만이 작가 대접을 받고 감독은 쿠커를 비롯한 많은 미국감독들처럼 하나의 기능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채플린은 말할 것도 없이 프랭크 카프라나 조지 스티븐스가 등장하면서 감독은 제작자 겸 작가로서 인식되고 마침내 히치콕에 와서야 감독은 문학에서의 샤토브리앙처럼 진정한 작가로 인정받게 됐다.
요즘엔 물론 그것은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하나의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영화는 세계에 대한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대로 볼 줄 알면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일정한 시기에 찍힌 세계에 대한 영사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그 안에서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들간에 맺는 성적, 사회적, 재정적인 관계들을 연구하면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이런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디언의 삶은 연구하면서도 동시대인들에 대한 관심은 죽은 거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도 멀리 아프리카까지 갈 게 아니라 비양쿠르(파리 외곽시역 이름)에 사는 사람들의 혈족관계를 연구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테송:
사실 프랑스영화보다도 미국영화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세계에 대한 재현을 읽을 수 있는데.
고다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리 킹즈> 같이 끔찍한 영화들도 더러 있다. 이 영화를 좌파영화로 분류한 신문기사들을 봤다. 당신(샤를르 테송을 가리키며),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평 참 잘 썼더군. 나도 왜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호평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나치의 악행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모든 걸 잊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제외하고. 당신 기사는 비평의 실천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 당신 기사를 읽고나서, 우리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말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 영화는 진보하나?
테송:
계속해서 신기술들을 접한다는 의미에서 DVD 플레이어도 가지고 있는가.
고다르: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걸로 영화를 본 적은 없다. 리모컨을 사용해야 하는데 좀 복잡하다. 바쁘지 않으니 슬슬 배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DVD 등 모든 하이테크놀로지 제품들을 사용할 줄 아는 하녀를 하나 기용하든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어떤 시기에 국한돼버리는 것 같다. DVD에 대한 담론들에 사실 약간 짜증이 난다. DVD로 모든 걸 할 수 있다, 굉장하다, 영상의 질이 너무 좋다, 라고들 하는데 영상의 질이 좋아지는 건 DVD 덕이 아니다. 이제 상품들은 대체되기 위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비디오로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 작은 비디오 스튜디오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비웃으며 미국이 덜 획일화한 사회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다들 진바지를 입고 농구공을 들고 다니지 않는가. 언어행위도 마찬가지다. 다들 같은 말만 하고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신기술들’이라는 단어말고 다른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비디오 카메라들은 이전의 카메라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비디오 카메라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건 옆에 별도로 붙은 작은 스크린이다.
그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재능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반면 음향에 대한 생각이나 기술은 거의 발전한 게 없다. 비평가들은 “소피 마르소, 정말 대단해”라고 말하지만 어떤 면에서 대단하다는 건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는다. 음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음향은 영상에 대한 설명이고 영상은 또다른 것에 대한 설명이다. 소니사가 비디오 제작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앞으로 영화제작은 분명 점점 더 비중이 작아지면서 쇠퇴할 거다. 어떤 기술이 모든 곳에서 영원히 번창할 수는 없다. 아직도 지구의 절반은 전화가 없다. 그들이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반드시 상황이 나아지는 거라고 할 수 있는가?
테송:
인터넷은 사용하나.
고다르:
아직도 난 타자기를 쓴다.
테송:
디지털 카메라로 거리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고다르:
만일 그렇게 찍어야 할 영화가 있다면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반드시 거리뿐 아니라 여행을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 간다면 그건 영화를 찍기 위해서다. 난 생각하다 문득 영화를 찍는 타입은 아니다. 바하마에 사는 어떤 사람과 수다를 떨기 위해 인터넷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을 거다. 물론 나도 그렇겠지만. 사실 대단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지내? 날씨는 좋아?” 뭐 이런 정도 아닌가 ?
테송:
그렇지만 예를 들어 우표수집처럼 공통된 관심사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고다르:
새뮤얼 풀러에 관심있는 어떤 사람과 인터넷으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고다르에 대한 사이트가 여러 개 있다. 물론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그리로 가면 대부분 잘못된 거긴 하지만 나에 대한 정보들을 구할 수 있다. 나라면 인터넷에 르누아르나 에이젠슈테인 사이트를 열진 않을 거다. 모든 사이트가 똑같다.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형식에 대해서만 떠들어댄다. 그것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형식은 아니다.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인터넷에 대해 소란을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3000년전 공상과학 소설이 좋다
테송:
사람들이 디지털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면, 그건 또한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 초기 영화로, 앙드레 바쟁이 옹호했던 영화로 회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다르:
나는 영화가 나아지지 않으면 세계 또한 진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세계가 변화할 수 있는 장이다. 영화는 세계를 구성하는 한 세포와 같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사물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앞으로 영화는 별로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작은 진전들은 있겠지. 하지만 혁명적인 발전이나 엄청난 쇠락 같은 건 없을 거다.
테송:
그렇다면 당신은 디지털의 ‘가벼움’이나 기타의 장점이 바쟁식의 영화를 가능하게 할 거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가.
고다르:
그건 단지 말에 지나지 않는다.
테송:
어쨌든간에 디지털의 유행은 이런 예측들을 낳고 있는데.
고다르:
그러한 예측들은 실업을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월드컵 축구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다른 얘기를 하기 위한 좀더 지적이고 허위적인 편리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난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한다. 앙드레 바쟁은 사진적인 영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가 글을 쓸 당시에 디지털이 있었다면 그에 관해 글을 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존재론까지 언급하진 않았을 거다.
왜냐하면 사실 디지털 영상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영상은 회화적인 것이든 아니든간에 그저 하나의 영상일 따름이다. 필름이 없는 디지털이 나왔다 해도 어느 시대고 매체는 필요한 법이다. 카메라 렌즈는 우리의 두눈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거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렌즈는 루이 뤼미에르 시대의 렌즈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나는 촬영기사 에디 콘스탕틴와 독일 시네마테크에서 빌려온 1910년의 카메라로 몇편의 에세이를 찍었다. 우리는 이 영화를 컬러로 찍었는데 나중에 독일 현상소에서 그걸 흑백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때 장 로스탕은 그렇게 말했다. “이론들은 지나가도 개구리는 남는다.” 지금 상황도 비슷한다.
테송:
디지털로는 딥 포커스가 불가능한 것 같다.
고다르:
맞다. 초점 거리를 두거나 원근을 표시할 수가 없다. 모든 게 선명하거나 모든 게 희미하다. 게다가 조명의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비디오 게임들, 플레이스테이션, 인터넷의 스타일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3천년쯤에 나올 공상과학소설들을 읽고 싶다.
테송:
<스타워즈> 봤나.
고다르:
아니. 그건 너무 바보 같고 너무 너저분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궁금해서 뤽 베송의 <잔다르크>를 보러 갔었다. 뤽 베송의 재능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영화에서 감독의 재능이 돋보인다고 생각되는 장면들과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장면들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차들도 예전보다 요즘 차들의 스타일이 훨씬 떨어진다. 요즘 차들을 보면 이전부터 내려오던 똑같은 형식을 취해서 세부적인 부분들만 조금 손본 뒤 ‘신차’라고 내놓는다. 이전 차들은 전체적으로 창조성이 돋보였다. 르노는 분명 시트로앵과는 달랐다.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나도 잘 모르겠다.
테송:
당신은 당신 이전에 활동했던 감독들에게는 많은 관심을 가지지만 당신 이후에 활동하는 감독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젊은 감독들에게 “알아서 잘하라고 그래”라고 말한 걸로 아는데.
고다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냐 하면, 내 생각에 그들은 말이 너무 많다. 그게 좀 껄끄럽다. 나도 당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감독들의 이름을 인용하는 걸 걸코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런데 요즘 감독들은 이름만 말한다. 나보다 약간 어린 세대로는 앙드레 테시네나 베르트랑 블리에, 그 다음 세대로는 아르노 데플레생이나 올리비에 아세야즈를 괜찮은 감독으로 들 수 있겠지. 사람들은 그들이 뭘 하는지 얘기만 하지, 보려고 하질 않는다. 이건 당신과 인터뷰를 시작한 뒤부터 줄곧 되풀이하는 말이다. 영화는 존재하지 않거나 영화는 곧 그들이다. 하지만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은 곧 나다”라고 말한 의미에서는 아니다. 영화가 그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거지 그들이 영화를 존재하게 해주는 게 아니다. 때때로 비평가들의 글을 읽고나서야 어떤 영화인지 알게 될 때가 있다. 가령 동일한 영화에 대해 장 미셸 프로동(<르 몽드> 영화담당기자)은 좋은 점을 얘기하고 세귀레가 나쁜 점을 얘기하면 그 영화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잡히는 거다. 한 사람의 비평만 읽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튼 요즘 영화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매혹시켰던, 뭐랄까 안이한 삶이 있다. 그녀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영화여, 언제나 우리 곁에
테송:
세르주 다네는 촬영장에서는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고다르:
정말 그렇다. 필름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날, 세계도 변할 거다. 문학과 영화의 본성인 기록하는 방식, 증언하는 방식도 사라지게 될 거다. 카프카는 “긍정 명제가 주어지지만 우리는 부정 명제를 만든다”고 했다. 영화는 이러한 체계에 대한 메타포를 제공한다. 오늘날 프랑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긍정 명제는 주어진 반면 부정 명제는 만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가령 아르노 데플레생은 <죽은 자들의 삶>에서 그의 경험과 가족들을 통해 그에게 아주 단순하게 주어진 긍정 명제에 대해 아주 적절하고 구상적인 방식으로 부정 명제를 만들었지만 이후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젊은 프랑스 감독들은 그들의 영화적 무의식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의 말에는 항상 약간의 거만함과 과장이 들어 있다. 오늘날 문화의 활황은 파롤(말)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형편없는 재판이라도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증거없이 겉포장만 화려한 문화적 생산물들이 너무 많다. 아벨 페라라나 코언 형제(개인적으로 이들의 말과 영화 둘 다 싫어하는데)의 작품에 대한 열광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작품이 왜 좋은지 왜 싫은지에 관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테송:
그렇다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주석이나 논평을 절대적으로 거부했던 하워드 혹스와 존 포드의 방식을 선호하는 건가?
고다르:
아니. 그건 더 나쁘다. 그들은 항상 단일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시작했다. 유럽에 와서 새뮤얼 풀러가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테송:
그렇다. 그건 분명 영화의 장점이다.
고다르:
영화는 축구와 같다. “그 영화는 정말 좋았어”, “그 영화는 정말 후졌어”라고 아무나 거리낌없이 그의 의견을 낼 수 있다. 오늘날 누구나 “나도 영화 찍어”라고 말할 수 있고 신문들도 “조그마한 디지털 카메라 한대만 있으면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자, 여러분도 감독이 돼보라. 오늘날 토요일 저녁의 ‘영화보기’는 있어도 토요일 저녁의 ‘그림보기’는 없다. 안 마리에게 “설사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다해도 사람들은 늘 작은 영화를 만들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에릭 로메르도 6천만프랑의 디지털 영화를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늘 영화를 만들 거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여행>을 보면서 차 안에 앉아 있는 한 커플만 갖고도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난 늘 이 사실을 하나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번역 박지회/ 파리3대학 박사과정
영.꿈 영화제작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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