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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사물

der letzte Ort auf der Erde

배수아


지상의 마지막 장소



특별히 원하지 않더라도 신문이나 잡지 방송등의 대량정보매체에 귀를 열심히 기울이고 탐독하다보면 어느새 세상이 개인이 좀처럼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하고 도도한 하나의 물줄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사람들의 대화, 몸짓, 꿈, 모드Mode, 표정과 생태가 그것을 따라 함께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몇 달동안만이라도 대량정보매체를 전혀 접하지 않고 있으면 이 세상이 나에게 누런 물결로만 보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고적하고 맑은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한때 사하라 사막과 알래스카는 은둔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지상의 마지막 장소였다. 내가 생각하는 지상의 마지막 장소는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이 없는 곳이다. 아니 지금 그 자리에 그냥 머물면서 그런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남극여행단에 합류하거나 – 남극이 지상의 마지막 장소라고 믿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었다 - 산사를 찾아가거나 하는 것보다 효과면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삶의 방법이 더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여기서 논의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최근 몇년간 삶의 방법에 대해서 나를 많이 생각하게 만든 것은 음식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밖에서 사람을 만날 일도 거의 없는 편이고 그럴만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일단 사람을 만나서 밥을 함께 먹게 되면 식당이나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는 술고 고기도 먹지 않는데 상대편은 그 두가지 중 하나를 대개 원하기 때문이고 - 때로는 두 가지 다 – 서로 다른 것을 먹는다 하더라도 적당한 메뉴를 제공해주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기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한국어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야채김밥이라 이름붙여 놓고 햄을 집어넣었으며 포장지에는 야채 만두라고 써 놓고도 국산돼지고기 XX %, 하고 자랑스럽게 표기해 놓는 일이다. 만일 젓갈이 들어간 김치나 멸치로 우려낸 국물도 먹지 않는 절대적 채식주의자일 경우라면 굶어죽어야 할 판이다. 더욱 나쁜 경우는 친구집에 초대를 받는 것이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나를 위해 저녁을 차려 주었는데 고기가 많이 들어간 매운 수프인 굴라쉬였다. 입맛이 없다는 나를 위해 일부러 차려준 것이었다. 주사위모양의 고깃덩이가 둥둥 떠 있고 익은 살냄새가 풍기는 그것을 한 접시 받고 망설이다가 나는 결국 그것을 먹었다. 물론 그 친구에게 내가 가능하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그 이전에 한 여섯번쯤 말한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부터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식성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친구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육식주의가 당연한 세상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이 육식주의자가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이 자주 망각된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한때 살아있던 것을 먹는 행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 보았다. 조개를 물에 넣고 끓이는데, 그 조개가 지금 살아있는 상태인가 죽은 상태인가, 만일 살아있는 것을 뜨거운 물 속에서 천천히 죽이는 거라면 자기는 먹지 않겠다고 고집피우는 사람도 있었고 달걀이 야만적인 양계장에서 집단 사육한 닭들이 낳은 것인지, 아니면 땅에다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키우는 닭이 낳은 것인지 반드시 따지고 먹는 사람도 많았고(달걀의 건강상태나 항생제 투여여부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내 친구 S는 눈이 있는 것은 무조건 먹지 않는다. 동물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도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문제는 육식자체가 아니라 홀로코스트와 다를바없는 동물 사육이라면서 야생상태에서 잡은 것만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도시 생활자에게는 불가능하리라.

음식을 피할 수 있는 삶은 없으므로, 채식주의자들의 슬로건인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이다.’가 절대로 과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평생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한 일이지만 그걸 위해서 허락된 시간이 이제 지나간 것을 압니다. 더 이상의 죽음은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고비사막에서 낙타와 평생을 함께 한 유목민이 기도를 올린다음 낙타를 도살하는 임무를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한 말이다.

나는 간혹 채식주의 또한 한국에서 지상의 마지막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물론 친구의 굴라쉬 수프 한접시를 거절하지 못한 실패한 사이비 채식주의자일 뿐이지만, 언젠가 S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말로 아토피도 아니고 건강이나 종교도 아닌 순수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싶다면, 육식주의자 친구들과는 절교하는 수 밖에 없다.’ 싸늘하고 냉정하게 들리지만 한번이라도 채식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려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