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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왼손잡이 여인



"이제 말해 봐"
"난 별안간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어요." 여인은 그 말에 다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이 나를 떠나리라는 것, 당신이 나를 혼자 버려 두리라는 깨달음이었어요. 바로 그거예요. 부르노, 가세요.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요."
잠시 후 부르노는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이다가 팔을 반쯤 들며 물었다. "영원히 말이지?"
"모르겠어요. 그저 당신은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리라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부르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난 우선 되돌아가서 호텔에서 따끈한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어. 그리고 오후에 짐을 가지러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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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제각기 조심스런 몸짓을 하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제야 부르노가 여인더러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마치 남의 이야기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집 안에 혼자 있으면 쉽게 피곤해져요."
여인은 길에까지 그를 전송했다. 그들은 전화 박스가 있는 곳까지 나란히 걸었다. 별안간 부르노가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여인은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왼손잡이 여인 / 페터 한트케/
                        홍경호 / 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