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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시의 제목은 "선운사에서" 시인은 최영미 내가 발췌한 책 제목은 "해인사를 거닐다" 전우익 씨가 쓴 글의 일부다. 시도 좋았고 전우익 씨가 쓴 편지조의 글도 맘에 든다. 난 이분 문장들이 예전부터 좋더라. 죽은 선배에게 보내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 구절 중에 내가 젤 맘에 든 건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어제는 밤늦게 뭘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마음이 흐믈흐믈 해져서 흘러내리는 거 마냥 이상했다. 그러더니 간밤 꿈엔 옛 친구들이 나타났는데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위안은 음악 Emilie Simon- Desert 더보기
표현할 수 없는 말을 할 수도 표현할 길도 없으며 역사의 테이블 위에 끼적거려 놓은 낙서처럼 인간 군상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 한여름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 그것은 현실인가 꿈인가, 좋은가 나쁜가, 소중한가 무가치한가? _로베르트 무질, [통카 Tonka] 중에서 레이스 뜨는 여자 La Dentelliere 서문에서 / 파스칼 레네/ 이재형/부키 더보기
animals for cuddling 그녀가 강연하는 동안, 그의 마음이 산란해지고 있었다. 이전에 그는, 그녀의 이런 반생태주의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재규어에 관한 시가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양들 주위에 서서, 양들이 매- 하고 우는 소리를 들으며, 양들에 대해서 시를 쓰는 호주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점이 동물권 운동 전반에 대한 의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흰쥐와 참새우는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닭과 돼지 같은 가축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올라타기 좋을 것 같은, 명상에 잠긴 고릴라와 매력적인 재규어 혹은 껴안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하는 판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동물로 산다는 것 / 존 쿳시 / 전세재/평사리 더보기
'플루타르크의 대답' 식단을 정하는 것은 다행히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화 중간에 누군가, "코스텔로 여사, 무엇이 당신을 채식주의자로 만들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의 어머니가 의기양양하게, 그와 노마가 일컫는, 이른바 '플루타르크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벌어질 상황을 처리하는 일은, 오로지 그 혼자의 몫이 될 것이다. 방금 말한 플루타크의 대답은 플루타크의 도덕 수필집에서 나온다. 그는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외우고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 구절을 완전히 암송하고 있었다. "제게 왜 육식을 거부하냐고 물으셨죠? 저는 당신이 죽은 동물의 시체를 입 안에 넣고, 썰어진 육질을 씹고, 시체의 상처에서 흐르는 육즙을 마시면서도, 어떻게 역겨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더보기
고전 - 이태준 백수사의 새번역물을 읽는 맛도 좋지마는 때로는 신문관이나 한남서원의 곰팡내 나는 책장을 뒤지는 맛도 좋아라. 고전 고전 하는 바람에 서양 것만 읽던 분들이 돌아와 조선 것을 하룻밤에 읽고 하룻밤으로 낙망한다는 말을 가끔 듣는 바 그런 민활한 수완만으로는 서양 것인들 고전의 고전다운 맛을 십분 음미하였으리라 믿기 어려웁다. 고려청자의 푸른 빛과 이조백자의 흰 빛이 지금 도공들로는 내지 못하는 빛이라고만 해서 귀한 것은 아니니 고려청자의 푸름과 조선백자의 흼을 애완함에 공예가 아닌 사람들이 차라리 더 극진함은, 고전은 제작 이상의 해석, 제작 이상의 감각면을 따로 가짐이리라. "달아 높이곰 돋아사 멀리곰 비최이시라" 이 노래를 읊고 무릎을 치는 이더러 "거 어디가 좋으시뇨" 묻는다더라도 "거 좀 좋으냐" 반.. 더보기
작품애(作品愛) - 이태준 (앞부분 생략)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위에 기동차의 소녀처럼 울지는 않았다. 왜 울지 않았는가? 아니 왜 울지 못하였는가? 그 작품들에게 울 만치 애착, 혹은 충실하지 못한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써야 옳을 것이다. 무서록 더보기
일분어(一分語)- 이태준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 마음에 품은 뜻은 많으나 말로는 그 십분의 일밖에 표현 못한다)란, 품은 사랑은 가슴이 벅차건만 다 말 못하는 정경을 가리킴인 듯하다. 이렇듯 다 말 못 하는 사정은 남녀간 정한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 표현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느껴진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뜻을 세울 수가 없고, 말을 붙일 수가 없어 꼼짝 못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다. 나는 문갑 위에 조선조 때 제기 하나를 놓고 무시로 바라본다. 그리 오랜 것은 아니로되, 거미줄처럼 금간 틈틈이 옛 사람들의 생활의 때가 푹 배어 있다. 날카롭게 어여낸 여덞 모의 굽이 우뚝 자리잡은 위에 엷고, 우긋하고, 매끄럽게 연잎처럼 자연스럽게 변두리가 훨쩍 피인 그릇이다. 고려자기 같은 비취빛을 엷게 띠었는데 그 맑음, 담수에.. 더보기
아니야, 그건 틀린 소문이야. 하고 대답하려 했으나 문득 귀찮아졌다. 모두들 그 일에 대해서 "네가 원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라거나 "사실대로 말했다면 나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생략) 모두들 합창하듯이 똑같은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 난 말이야, 특별한 사람이니까"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몇달만 지나면 모두들 잊어버릴 일이니까 굳이 해명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 배수아 / 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