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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생각의 일요일들




새책이 나왔는 줄은 진작 서점에서 보고 알고 있었지만 난 별로 산문집은 읽고싶지 않아서 한번 들춰보고 툭 던져놓고 돌아섰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다.
결국엔... 좋아하며 읽었고, 은희경 작가를 다시 좋아하게 됐다.

작가만의 유별난 세계관이나 매니아스러운 취미같은 것도 아니고, 
거장이 정립하는 개념이나 가치관 같은걸 적은 글이 아닌 이 책의 정체성은 뭐였나 생각해보면,  
나와 비슷한 고독과 공허함을 간직한 듯한 어떤 소녀같은 작가가 툴툴대기도 하고, 울쩍해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어떤 일에 좋아하고 기뻐하는 작은 일들을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 글들은 발랄하고 위트있었고 솔직해 보였다.
은희경이란 작가가 더이상 내게는 특별하지 않다고 어느순간부터 생각해왔는데,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것 같다.  



'미숙하고 불안하고 혼란스럽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순수한 갈망과 운동성을 가질 수 있다.
나는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의외적이고 서툰 서사에 흥미가 있다.'



그녀가 여행다니면서 쓴 글들도 좋았다.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하는 여행(한곳에 오래 살아보는...)을 좋아하시는구나.



'여행의 시간은 흘러가버리지 않고 내 몸 안에 새겨집니다.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수행하느라 긴장되고 바쁘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여행의 여정이란 돌아온 다음부터, 내 마음속의 반추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대화들,



'어제, 취중의 대화 하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는 그런 짓을 하고 나면, 좀 건전해지는 것 같아.
-그걸 이제 알았어? 난 진작에 알았는데.
-그래? 그래서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도 뻔뻔스러웠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