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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자기 앞의 생

본래 직업을 내던지면서 "내 삶의 본질에 대한 야망과 사랑을 실행하겠다"라고 선언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로맹가리.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출간되어 공쿠르 상을 두번 받는 유례없는 헤프닝을 만들 기도 한 소설 <자기 앞의 생>이다.

모모가 태어나고 자란, 창녀들이 살아가는 게토 공간은 상처받은 삶들의 공간을 대변한다. 게토 바깥 세상에선 허용되지 않는 것들의 공간이다. 게토 외부 공간은 '정상적인 것'을 내포하며 암묵적으로 게토를 미워하고 인정하지 않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가짜 서류들로 가득한 곳에서 국적없이 살고있는 로자 아줌마, 여자도 남자도 아닌 여장남자 롤라 아줌마, 무슬림인지 유태인인지 구분이 어려운 고아 모모 등 모든 것이 고정되지 않은 공간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죽자 그녀에게 화장을 시키고 향수를 부어댄다. 이전에도 모모는 영화녹음실에서 장면이 되감기 되는 걸 보면서 죽은사람이 살아나는 그 '되돌아감'에 대해 매혹을 느낀바가 있다. 로자 아줌마 역시 죽기 전 치매로 정신이 들락날락 할 때면 젊은시절 창녀노릇을 했던 차림을 하고 길에 자꾸만 나가려고 한다.

어쩌면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가 없는 것은 생의 공간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이 아닌 것일 것이다. 원하지 않음에도 비참하리만큼 죽음을 연장시키려고 하는 병원이나, 모모를 데려갈지도 모르는 보호소나 경찰은 그들에게 두려움일 뿐이다.